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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겨내는 영광/ 로마서 8 장 12-18절
팔과 다리가 없어도 전 세계를 누비며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니콜라스 부이치치라는 성도입니다. 태어날 때 부터 우리에게 있는 두 팔과 두 다리가 없었습니다. 두 팔은 완전히 없고 다리는 두 다리 대신“닭 발”같이 조그마한 물체가 붙어 있는 정도입니다. 태어날 때 부터 두 팔과 두 다리를 아무 불편 없이 사용하며 살아온 우리들은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곤란함과 불편함의 인생이었습니다. 현재의 고난 그대로인 인생으로 시작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지구촌의 19 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어린이들로 부터 어른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사람들에게, 잘 사는 나라는 물론 찌들게 가난한 나라들에게 달려가서 한 가지를 전합니다: 희망은 있다, 어떠한 형편일지라도 희망은 있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데 모든 사람에게는 그 하나님이 주신 뜻과 목적이 있다! 29 살 난 그가 승리를 웨치며 저의 마음에 한 없는 감동과 도전을 준 말입니다,“팔다리가 없다? 절망도 없다!”그는 분명히 이 땅의 한 평생을 태어날 때 부터 고난이나 고통, 불편함을 그대로 안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이나 고통이나 불편함에 얽메이기는 커녕 오히려 그런 것들을 디딤돌로 삼아 참된 행복을 살고 그 행복을 증거하여 수 많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과 삶을 살리고 있습니다. 닉 부이치치는 15 세에 거듭나는 믿음을 가졌기에 고난을 이기며 그 고난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고난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우주적으로 공통적입니다. 이 지구촌을 살았고 살고 있고 살게 될 모두에게 그 나름 대로의 작든 크든 고난은 있습니다. 뜻하지 않는 교통 사고나 감기와 같은 육신의 질병은 물론 예기치 못한 천재 지변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고난입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의 이별이나 죽음입니다. 견디어 내기 힘든 아픔과 고통과 고난입니다. 특별히 고쳐지기는 커녕 더욱 악화되는 병으로 신음하는 가족을 둔 경우 그 아픔은 큽니다. 성도님들에게 만약 그런 고통이나 슬픔이나 아픔의 고난이 없었다면 정말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
저에게는 처제가 둘 있습니다. 저의 아내가 특별히 가깝게 마음을 주고 받으며 또 언니를 따랐던 둘째 처제가 지금 한국의 병원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두 번 다녀갔었습니다. 형제들에게도 늘 따뜻한 사랑을 베풀며 살아온 처제입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하고 중 고등학교 선생으로 최선을 다 해 일하며 가정을 돌보아 온 모범 아내이고 두 아들들의 어머니입니다. 이제 갓 50의 나이를 넘긴 중년입니다. 5 년 여 전 부터 근육 무력증이라는 병으로 고생해 왔습니다. 지금은 혼자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일생의 황금기 같은 중년인 데 음식을 입으로 먹어서는 안되기에 수술하여 호스로 넣어주 어야하는 형편입니다. 안타까움이 참으로 큽니다.
고통이나 고난의 원인이 분명한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고난이나 시련의 뚜렷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입니다. 모든 우주 만물, 특별히 사람이 가장 복되게 살도록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법칙이나 질서나 원리가 있습니다. 그 창조 질서를 계속해서 거스리는 결과로 인한 고통이나 고난이 있습니다. 이유가 분명하고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는 고통이나 고난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한 번은 제자들이 나면서 부터 소경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당시의 소경은
문자 그대로 비참하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선생님, 이 사람이 날
때 부터 이렇게 소경되었는 데 누구의 죄 때문인가요? 이 소경을 낳은 부모의 죄 때문인가요? 아니면 본인의 죄 때문인가요?”제자들의 이 질문에 예수님이 주신 대답입니다,“그 사람의 부모나 본인의 죄 때문이 아니다. 소경된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 보여주시기 원하심 때문이다!” 섭리적인 고통이나 고난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하신 뜻을 두신 고통이나 어려움이나 고난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자녀인 성도가 고통이나 고난을 거쳐가게하시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알 수 있건, 또 섭리적인 고난이건 중요한 것은 고통이나 고난의 뜻입니다. 믿는 성도인 우리가 작고 큰 어려움 이나 고통이나 아픔이나 슬픔이나 불편함이나 고난을
만날 때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입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주는 승리의 비결입니다, 현재의 고통이나 고난을 최고, 최대의 유익이나
축복을 누리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믿음이 비결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은 영원히 좋고 완전하고 전능하신 분임을 받아들는 태도입니다. 그 하나님이 자녀 삼으셨기에 하나님의 뜻이나 계획을 결코 실수 없이 이루어가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맡겨드리는 자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 중에서 고통이나 고난을 크게 당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17 살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종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서도 종의 형편이 그랬거늘 지금 부터 4 천 여년 전의 애굽에서 종은 그
형편이 고통이나 고난, 그대로였습니다. 또한 종으로 억울하게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그런 요셉이 30 살에 애굽의 국무 총리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인생 역전입니다. 그야말로 고난을 딛고 일어나 영광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비결은 믿음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인가요? 하나님은 영원히 좋으신 전능하신 사랑의 아버지이시기에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것을 가장 좋게 이루어가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이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0) 사람은 형제에게도 해를 끼치고 악을 베풀 수 있습니다.
요셉의 10 형들이 요셉에게 그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것, 해할려는 악까지도 선으로 바꾸시는 전능 하신 분입니다. 요셉은 그 하나님이 자기의 일생 속에 두신 뜻과 목적과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데 사람의 악까지도 선으로 바꾸신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었기에 국무총 리가 되는 길이 열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그렇게 인도해가셨다는 고백입니다. 그 하나님을 요셉 처럼 믿고 의지했기에
승리한 바울의 확신입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감사입니다. 감사는 최선의 효과가 보장된 명약입니다. 영적인 명약입니다. 어렵고 힘드는 데 감사까지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유익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앞날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유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유익은 현세에서는 물론 영원한 유익입니다.“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현재의 어렵고 힘들고 아픈 것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렇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이렇게 선언합시다, 이 아픔이나 어려움 때문에 나 같은 죄인이 영원한 영광에 동참하게 된다고.“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예수님 안에서”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공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되었기 때문에“범사에 감사하는 것” 입니다.“범사”, 곧 모든 일들, 어떤 형편이나 처지, 고통이나 고난이나 외로움이나 아픔이나 아직 해결되지 않아 안타까운 형편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인내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원하면 인내로 승리하는
능력을 반드시 주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5:3-4)고 증거합니다.“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약5:11) 욥이 당한 어려움들입니다, 갑자기 마치 토네이도가 불어오듯이 재산이 다 날라가버리고 아들 딸
10 명이 한꺼번에 죽고 건강까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후 세 친구들이 찾아와서
위로한다고 하나 그들의 말은 상처에 소금 뿌리듯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엘리후라는 젊은 친구의 책망 과
권면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기간 이 상당히 길었던 것 같습니다.“욥의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좋으심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그런 욥에게 하나님은 갑절의 축복이라는 “결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소망 중에 인내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승리하게 하시고
또한 큰 복을 누십니다.
20세기 초 하나님은 중국에서 위치만 리라는 목사님을 쓰셨습니다. 리 목사님의 많은 책들이 영어로, 한국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귀한 목사님이었습니다. 리 목사님이 20 대에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치유의 가능성이 없어보였습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 리 목사님은 긴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거슬려 올라가는 데 배가 그만 큰 바위에 부딪쳤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 렸습니다,“그 바위를 치워주랴? 물이 불어나게 해서 물위로 배가 지나가게하랴?”물이 불어나게 해 달라고 응답하자 순식 간에 물이 불어나서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입니다. 바위 같은 고통이나 아픔이나 어려움이 아무리 앞을 가로 막을지라도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작고 큰 어려움이나 고통이나 시련이나 고난을 만날 때 한 가지를 꼭 기억하십니다, 성경 말씀입니다, 현재의 이 고난은 장차 하나님이 내게 줄 영광과는 결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영광의 소망으로 승리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