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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통한 성도의 교통/ 빌립보서 1 장 3-11 절
한국 어느 방송국의 <코갓텔, Korea Got Talents>이라는 프로 그램을 통해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최성봉 청년의 말입니다,“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게 친구 잖아요. 저는 그런 친구가 진짜 없어요.”그도 그럴 것이 그 특별 재능 시합에 나오기 까지“낮에는 노가다 띄고 밤에는 퀵서비스를 했다"고 고백한 그 청년이었습니다. 친구를 사귈 형편이 전혀 못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마 22 년 간 살면서 모든 것을 혼자 감당 해야했던 그 청년의 아픔이 많은 사람에게 동정적인 감동으로 부딛쳐 왔습니다.
사람은
혼자 살도록 지음받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 장, 인류 역사의 첫 페이지에서 부터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 곧 혼자 사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혼자 있는 남자 아담을 보시고 긍휼히 여기셔서“돕는 배필”로 하와라는 여자를 창조하셔서 남자와 함께, 더불어 살게하셨습니다.
사람은 더불어 함께 살아야합니다. 혼자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또 사실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수년 전에 가까이의 몽클레어에 사는 어느 미국 회사 중역이 폭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배달된 우편물을 열었을 때 그것이 폭탄으로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편 폭탄을 보낸 자가 누구냐 였습니다. 머리가 아주 좋아 하바드 대학교에서 수학 박사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콜로라도 주의 아주 외딴 곳에 오두막 같은 데 혼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혼자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것은 자신에게나 이웃에게 큰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함께 더불어, 교제하고 교통하며 살아가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한문 글자에 사람을 뜻하는“인, 人”의 모양은 두 가지가 서로를 받쳐주는 모습입니다. 동양의 지혜도 사람은 교제하고 교통하며 살아가야할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데는 여러 종류의 모임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한인 사회에도 여러 종류의 모임들이 있습니다. 한인회를 비롯해서 동창회, 고향 지방회, 사업에 따른
여러 종류의 협회들, 취미 동우회…그 많은 모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모든 모임들 가운데서도 가장 중심되고 중요한 모임은 교회입니다. 물론 교회는 다른 모임들 처럼 사람이 시작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내 교회를 세우리라”,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믿음 위에 예수님이 세워주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셔서 교회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사도신경> 은 그 교회를“거룩한 공회”라 믿는 믿음을 고백하도록 도우는 것입니다.“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을 믿는 고백입니다. 오늘은“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 그 고백을 함께 생각할 수 있기 바랍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성도의 교통, Communion of Saints”입니다.“교통, Communion”은 신약 성경이 기록된 헬라 말로는“코이노니아"입니다. 이 말은 신약 성경에서 “교제, 교통, 참여, 동참, 나누어 줌”의 뜻으로 쓰여졌습니다. 사실 이“성도의 교통”은 교회의 내적인 모습, 곧 교회의 내용입니다.
사도행전은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보여줍니다,“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27) “성도의 교통”이 과연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입 니다.
“성도”, 곧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어 거둡난 그리스도인은 서로 교통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 생활은 믿는 사람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모이는 것이 필수라는 뜻입니다. 결코
혼자서, 외톨이로 승리하며 열매를 맺는 믿음 생활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는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아뢰며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경건이 참된 유익을 얻는 길은 성도의 교제, 교통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 곧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을 몸으로 비 유해서 설명합니다.“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는 자의 충만이니라…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엡1:22, 5:30, 고전 12:12)
우리의
몸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쉽게 보여지는 외적인 지체들, 곧 손, 발,
다리, 머리, 눈, 귀, 코, 입…그리고
보이 지는 않는 내적인 지체들, 곧 심장, 허파, 위, 창자…이런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많은 지체들이
함께 한 몸을 이룹니다. 다른 지체들과 함께 사이좋고 의좋게, 협동하고
협력해서 몸을 건강하게 가꾸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체들의 교제와 교통입니다.
곧“성도의 교통”은 먼저 지체들이 서로를 도우고 돌보며 사랑함으로 참된 평화와 평강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교회의 모습이어야함 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는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4:2-5)
사랑하는 성도님들, 교회는 성도의 교통인데 성령 하나님이 그 교통을 이루어지게 하셨고 또 이루어나가고 계십니다. 평안과 위로와 기쁨과 소망과 사랑의 교통입니다. 그런데 종 종 성령님이 이루어가시는 그 교통이 깨어지는 것을 봅니다. 성도들이 성령님이 이루어가시는 교통을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모든 겸손과 온유함, 그리고 오래 참음과 서로를 용납함”으로 사랑과 평화의 교통을 계속해서 이루어가야합니다. 그럴 때 예루살렘 교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요? 세상 불신자로 부터 "칭송"을 들었습니다. 존경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을 더해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에 그런 복을 주일 마다 더욱 크게 허락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교회에 사랑과 화평의 참된 성도의 교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는 꼭 잊어서는 안될 일이 있습니다. 사실 사랑과 화평의 교통은 수평적인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그 수평적인 관계가 아름답게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직적인 관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수직적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인 빌립보서 1 장 5 절은 그 관계를“복음에서 교제함’이라고 증거합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은혜와 복으로 새로워는 것입니다. 7 절은 “은혜에 참예한 자”라고 바울 사도는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체험한 사람이 나누는 교제입니다. 단지 인간적인 유익이나 편의를 위해서 나누는 교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았기에 그 은혜를 함께 나누는 교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5:1) 하나님과 더불어 먼저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죄인인 사람, 나 같은 죄인이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과 어떻게 교통하고 교제를 누리를 수 있는가요? 하나님은 영원히, 완전히, 죄를 떠나 계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죄는 벌하셔야 되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인데 어떻게“하나님 아버지”하고 부르며 기 도드리며 예배드리며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릴 수 있는가요?“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길 때문입니다. 죄인인 나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해주시고져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피의 값, 피의 공로 때문입니다.
좀 오래전 이야기 입니다. 물이 귀해서 오염된 흙탕 물만 먹고 살던 아프리카 콩고 사람이 미국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호텔 에 있는 수도 꼭지를 돌리니까 깨끗한 물이 한 없이 쏟아져 나 옵니다. 그러자 그 콩고 사람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내가 저것을 고향에 선물로 가져가야겠다. 저것만 있으면 물 걱정은 없으리라.’얼른 랜치를 사와서 수도 꼭지를 뜯어내 가방에 넣 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았습니다.“내가 이제 부터 우리 동네의 물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그렇게 웨치고는 그 수도 꼭지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 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도 꼭지가 아무데서나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조건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수원지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수도관과 연결되어야합니다.
죄는 영원한 영생이시고 모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부터 흘러나오는 영생과 복으로 부터 끊어지게 합니다. 그런데 예 수님의 십자가는 무한히 흘러오는 영생과 복을 받아 누리게 하 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수평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수직선이 있습니다. 위로 부터 흘러오는 예수님의 은혜와 공로를 온전히 힘입을 때 참된 성도의 교통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은“예수님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때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교제해주십니다, 교통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참된 교통은 위에서 부터 아래로 그려진 십자가의 수직선이 있어야합니다. 수평선과 수직선의 만남, 곧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만 성도의 참된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눈으로 볼 때만이 이웃의 허물과 부족과 결점을 덮여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볼 때만 진정한 용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교통은 십자가의 은혜로 죄를 용서함받은 죄인들이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말씀과 기도로 나누는 영원히 귀한 사귐입니다.
“성도의 교통”을 늘 아름답고 참되게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강수가 흘러 넘치는 가슴일 때 참된 교통을 이루어갑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참된 교통을 이루 어갈 때 “성도의 교통”의 파동이 널리 펴져나가 땅 끝까지 미칩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파동입니다. 그런 참된 성도의 교통이 계속해서 이루어져 가도록 성령께서 주장해주시기를 간절 히 축원합니다, 아멘
